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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개역개정

전도서 4장

그린시드 2024. 1. 7. 04:30

목차

     

    바울이 코린도 교회에게 쓴 편지 중 하나입니다. 이 장에서 바울은 올바른 섬김과 신앙적인 가치에 대해 설명하며, 사도의 역할과 신자들의 자유에 대한 이해를 독려합니다.

     

    전도서 4장
    전도서 4장

     

    전도서 4장 : 학대, 수고, 동무

    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4.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5.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16.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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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clesiastes 4

    1. Again I looked and saw all the oppression that was taking place under the sun: I saw the tears of the oppressed-- and they have no comforter; power was on the side of their oppressors-- and they have no comforter.
    2. And I declared that the dead, who had already died, are happier than the living, who are still alive.
    3. But better than both is he who has not yet been, who has not seen the evil that is done under the sun.
    4. And I saw that all labor and all achievement spring from man's envy of his neighbor. This too is meaningless, a chasing after the wind.
    5. The fool folds his hands and ruins himself.
    6. Better one handful with tranquillity than two handfuls with toil and chasing after the wind.
    7. Again I saw something meaningless under the sun:
    8. There was a man all alone; he had neither son nor brother. There was no end to his toil, yet his eyes were not content with his wealth. "For whom am I toiling," he asked, "and why am I depriving myself of enjoyment?" This too is meaningless-- a miserable business!
    9. Two are better than one, because they have a good return for their work:
    10. If one falls down, his friend can help him up. But pity the man who falls and has no one to help him up!
    11. Also, if two lie down together, they will keep warm. But how can one keep warm alone?
    12. Though one may be overpowered, two can defend themselves. A cord of three strands is not quickly broken.
    13. Better a poor but wise youth than an old but foolish king who no longer knows how to take warning.
    14. The youth may have come from prison to the kingship, or he may have been born in poverty within his kingdom.
    15. I saw that all who lived and walked under the sun followed the youth, the king's successor.
    16. There was no end to all the people who were before them. But those who came later were not pleased with the successor. This too is meaningless, a chasing after the wind.

     

     

    4장 해설과 묵상

    바울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섬기는 사람들을 예시로 들며, 섬김의 가치와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는 사도들의 역할은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하고 전파하는 것이며, 그들이 섬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이익을 도모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교회 구성원들에게 권고합니다.

    또한 바울은 신자들의 자유에 대한 이해를 독려합니다. 그는 음식을 드시는 것이나 특정한 날을 지키는 것과 같은 외적인 규율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대신, 바울은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신앙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상호 간의 조화를 이룰 것을 권고합니다. 그는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질 수 있으며, 각자의 신앙생활을 존중하고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바울은 근면과 일하는 태도에 대해 강조합니다. 그는 게으름과 나태함을 버리고, 성실하게 일하며 자신의 손으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부담을 피하고, 자신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바울은 일하면서 하나님을 기리고 섬기는 태도를 갖도록 교회 구성원들에게 권고합니다.

    전도서 4장은 사도들의 섬김과 신앙적인 가치, 신자들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근면과 일하는 태도에 대해 다루는 중요한 장입니다. 바울은 사도들의 역할과 섬김의 가치를 설명하며, 교회 구성원들에게 올바른 섬김과 신앙적인 가치를 지니도록 독려합니다. 또한 바울은 신자들이 각자의 신앙과 자유를 존중하고 상호 간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권고합니다. 더불어 바울은 근면과 일하는 태도를 통해 자신과 가족,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며, 하나님을 기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교회 구성원들에게 권고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섬김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이야기

    가정 폭력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무엇인가요?

    가정 폭력은 좁게는 가해자가 친밀한 관계이거나 그런 관계였던 사람에 대해 행하는 폭력 혹은 위협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가정 폭력이라는 용어는 종종 “구타당한 아내” 혹은 아마도 물리적인 폭행으로 악화되는 부부의 말다툼을 떠오르게 합니다. 또한 가정 폭력은 보통 자녀 학대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록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부상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학대받는 부모들을 보거나 듣는 것은 심각한 정신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 폭력은 힘 그리고 지배에 대한 것입니다. 비록 폭력이라는 용어는 육체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가정 폭력 혹은 학대는 비육체적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학대자는 감정적인 혹은 경제적인 수단을 통해 그들의 피해자들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언어적 학대 그리고 성적 학대는 다른 유형들입니다. 모든 연령, 성별, 사회경제적 계급, 교육 수준, 혹은 종교에 걸쳐 가정 폭력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정 학대는 “폭력의 순환”의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긴장이 쌓이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사건은 일어납니다. 가해자는 아마도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함으로써 혹은 피해자에게 많은 선물을 쏟아 부음으로써 피해자와 화해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시간이 지나 다시 긴장은 쌓여 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순환의 단계들은 단 몇 분이 걸릴 수도 있고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중재 없이는 “화해” 그리고 “평화”의 시기는 종종 사라지고 맙니다.

     

    가정 폭력은 가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극명하게 반대됩니다. 창세기 1장 그리고 2장은 결혼을 한 몸의, 서로 돕는 관계로 묘사합니다. 에베소서 5:21은 상호 간의 복종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에베소서 5:22-24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을 설명하는 반면, 25-33절은 아내를 위한 남편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베드로전서 3:17도 비슷한 가르침을 줍니다. 고린도전서 7:4는,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속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형상입니다. 가정 폭력은 예수님의 성품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자녀들을 동반하는 가정 폭력 또한 하나님의 비난을 받습니다. 시편 127:3은,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맡기시고, 그 부모들은 애정으로 그 자녀들을 돌보고 교육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4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21도 참조).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들에게 순종해야 하고 (에베소서 6:1-3), 훈육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훈육은 폭력 그리고 학대와는 명백하게 다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다른 이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섬기는 것을 수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6-2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명령은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입니다. 에베소서 5:1-2은,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현재 가정 폭력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종종, 가정 폭력의 피해자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시기는 그들이 떠날 때입니다. 경찰에 연락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고, 혹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지역 기관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정 폭력이 진행 중일 때의 첫 번째 단계는 안전입니다.

     

    비록 피해자가 육체적으로 안전하고 신체 상처가 치유된 이후라도, 감정적, 정신적 상처들은 심각할 수 있습니다. 가정 폭력은 심각한 영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가 하나님을 불신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그분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실까요? 그분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분은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실까요? 당신이 학대받고 있을 때 그분은 어디에 계셨을까요? 치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일어날 것입니다. 학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우리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분노, 혼란, 상처, 수치심 등으로부터 우리는 치유될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자주, 피해자들은 조급하게 용서하기를 서두릅니다. 궁극적으로, 용서는 피해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대의 상처들이 우선 인정되지 않고 다뤄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용서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은 잘 훈련받은 크리스천 상담자의 지원을 받아 치유의 과정을 향한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학대자들에게 학대를 중단하는 것 외에 필요한 것이 없다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학대를 하게 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학대자가 기꺼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도움을 갈망한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해, 크리스천 상담은 대단한 가치를 가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 폭력 이야기는 저마다 다릅니다. 상황과 사람들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 문제를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단 하나의 글은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적어도 모든 학대가 중단되고, 양쪽 당사자가 개인 상담을 거쳤고, 또 모두 화해를 갈망하기 전까지는 부부상담은 적절한 해결 방법이 아닙니다. 가족 상담도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학대자가 경건한 육아를 배우는 동안, 절대로 학대 상황에 남겨지거나 혹은 남겨질 만한 입장에 놓여서는 안됩니다.

     

    가정 폭력은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입힙니다. 그분은 그 피해자들에게 냉정하신 것이 아니고, 그들을 버리신 것도 아닙니다. 인간관계, 특히 가족을 향한 그분의 계획은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아름다운 서술입니다. 가족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가정이 고통의 장소로 변할 때 이는 하나님을 슬프게 합니다. 가정 폭력에 동반된 자들, 즉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은 치유함과 완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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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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