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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코린도 교회에게 쓴 편지 중 하나입니다. 이 장에서 바울은 교회 구성원들 간의 분쟁과 사회적인 이익에 대한 탐욕에 대해 다루며, 신앙과 삶의 원칙에 대한 지침을 제시합니다.
전도서 6장 : 제물과 부요와 존귀도 헛되다
-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Ecclesiastes 6
- I have seen another evil under the sun, and it weighs heavily on men:
- God gives a man wealth, possessions and honor, so that he lacks nothing his heart desires, but God does not enable him to enjoy them, and a stranger enjoys them instead. This is meaningless, a grievous evil.
- A man may have a hundred children and live many years; yet no matter how long he lives, if he cannot enjoy his prosperity and does not receive proper burial, I say that a stillborn child is better off than he.
- It comes without meaning, it departs in darkness, and in darkness its name is shrouded.
- Though it never saw the sun or knew anything, it has more rest than does that man-
- even if he lives a thousand years twice over but fails to enjoy his prosperity. Do not all go to the same place?
- All man's efforts are for his mouth, yet his appetite is never satisfied.
- What advantage has a wise man over a fool? What does a poor man gain by knowing how to conduct himself before others?
- Better what the eye sees than the roving of the appetite. This too is meaningless, a chasing after the wind.
- Whatever exists has already been named, and what man is has been known; no man can contend with one who is stronger than he.
- The more the words, the less the meaning, and how does that profit anyone?
- For who knows what is good for a man in life, during the few and meaningless days he passes through like a shadow? Who can tell him what will happen under the sun after he is gone?
6장 해설과 묵상
바울은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소송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는 교회 구성원들 사이의 분쟁을 왜 자기들 사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법정에 의지하는지 의아해하며, 이러한 분쟁은 교회의 목적과 신앙적인 목표와 맞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를 속이거나 속이는 행위를 하지 말고 옳은 길로 돌아가라고 권고합니다. 또한 바울은 사회적인 이익에 대한 탐욕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는 재물과 세속적인 지위를 탐하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가치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신앙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신앙적인 가치와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재물과 세속적인 지위는 일시적이며, 영원한 가치를 가진 신앙적인 삶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 몸은 성령의 전신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음란한 행위나 부도덕한 행동을 멀리하고, 순결하고 건전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합니다. 전도서 6장은 교회 구성원들 간의 분쟁과 탐욕,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한 책임에 대해 다루는 중요한 장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교회 내에서 혹은 사회적인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며, 신앙적인 원칙을 따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우리에게 부르심니다. 우리는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교회 내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며, 탐욕과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순결하고 건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이야기
성경은 맹세와 서약을 지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하나요?
맹세에 대해 성경에서 약 30 군데 언급되어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구약성경에 있습니다. 레위기와 민수기는 제물과 희생 제물에 관련된 맹세에 대해 몇 가지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맹세를, 특별히 하나님께 맹세를 하고, 지키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입다의 이야기는 맹세에 따른 결과도 모르고 맹세를 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암몬 자손들과의 전투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기 전에, 큰 용사로 묘사된 입다는 그가 승리자로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최초로 그를 만나기 위해 문 밖에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물로 드릴 것이라는 성급한 맹세를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허락하셨을 때, 그를 만나기 위해 나온 사람은 그의 딸이었습니다. 입다는 그의 서원을 기억하고 그녀를 주님께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사사기 11:29-40). 입다가 이 맹세를 지켰어야 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다른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성급한 맹세의 어리석음입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맹세에 대한 새로운 계명을 주셨을 것입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태복음 5:33-37).
예수님께서 모든 종류의 약속, 계약, 혹은 동의를 비난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맹세(vow)라는 용어는, 이 경우에 특별한 종류의 맹세(oath)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짓이 아님을 맹세해(아니면, 내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죽겠다)” 혹은 “나는 성경을 걸고 맹세한다” 혹은 “나는 내 어머니의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라고 말할 때 하는 즉흥적인 맹세의 유형을 언급하고 계셨습니다. 그 분의 가르침은 신랑 신부의 맹세 혹은 법적 계약서와 같이, 주의 깊게, 심사 숙고한 약속들을 말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크리스천으로서의 원칙은 분명합니다: 주님께나 혹은 서로에게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맹세를 지킬 수 있을 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 때문에 우리가 판단의 오류를 내기 쉽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리석게, 미성숙하게 맹세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야고보서 4:14), 우리가 무언가를 하겠다 혹은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통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아니며, 그 분은 “[그 분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로마서 8:28). 이것을 앎으로써, 맹세를 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이것은 그 분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맹세하지 않고도, 우리의 말만으로도 충분해야 한다고 명하십니다. 우리가 “네” 혹은 “아니오”라고 말하면, 그것이 정확히 우리가 의미하는 바 여야 합니다. 우리의 말에 맹세나 서약을 덧붙이는 것은 우리를 함정으로 몰아넣고 크리스천의 신앙간증을 위태롭게 하기 원하는 사탄의 영향에 우리를 열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리석게 맹세를 한 후 그것을 지킬 수 없거나 혹은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그 분이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 (요한일서 1:9)을 알기 때문입니다. 깨어진 맹세는, 비록 심각하지만, 진정한 고백 안에서 주님께 맡겨진다면, 용서될 수 없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경솔하게 맹세를 하도록 하지 않으실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께 순종하고, 앞으로 맹세하는 것을 삼갈 것을 기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