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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개역개정

시편 13편

그린시드 2023. 8. 21. 00:31

목차

     

    다윗이 쓴 시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실 것을 기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고난과 슬픔에 빠져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를 영원히 잊지 않으시고, 그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시편 13편
    시편 13편

     

    시편 13편 : 다윗의 시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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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lms 13

    1. How long, O LORD ? Will you forget me forever? How long will you hide your face from me?
    2. How long must I wrestle with my thoughts and every day have sorrow in my heart? How long will my enemy triumph over me?
    3. Look on me and answer, O LORD my God. Give light to my eyes, or I will sleep in death;
    4. my enemy will say, "I have overcome him," and my foes will rejoice when I fall.
    5. But I trust in your unfailing love; my heart rejoices in your salvation.
    6. I will sing to the LORD, for he has been good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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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편 해설과 묵상

    성도에게 임한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시편 13편 1-2절에서 “어느 때까지?”라는 질문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계신다고 하여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거나 기도를 들으시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3절)” 자신이 하나님을 잊고 부인하고 죽어버릴까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릴 것 같아서 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도하던 다윗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 심이로다(5,6절)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주의 구원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3절에서 열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3절)” 그렇습니다.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보게 되면 어떤 절망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집사의 순교 장면을 봅니다. 스데반집사는 믿음 좋고 성령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일찍 죽은 것이, 그것도 돌에 맞아 순교한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인 스데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순교의 순간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눈이 열려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5-56)”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나니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다가 죽는 것으로 너무나 감사하더라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역경에 처해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너무도 오랜 기간 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 믿을 수 없어!” 탄식하며, 이제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조차도 포기하려고 하는 분이 있으십니까? 지금은 아니라 할지라도 앞으로 그런 상황을 만날 때, 준비되셨나요? 눈이 열리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십시오. 임마누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절망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십니다. 찬송하게 해 주십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국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구원이나 능력이나 복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반드시 실망하고 무너집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고 어두운 시절이 오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기도 응답이 지연되고 악이 세력을 얻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조차 가리어지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늘 함께 하심을 알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는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기꾼이 아니다,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소망이 없고 좌절이 와도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함께 하시니까요! 모든 것이 설명될 때, 나는 내 믿음이 신원될 것을 확신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으로 드러나실 것입니다.” “주님,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젠가 이 모든 것이 설명될 날이 올 것을 확신합니다. 그때까지 저는 주님 편에만 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상황들이 아무리 어둡더라도 우리는 그 어둠 가운데 무너지지 않고 주님과 함께 어려움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위기가 지난 후 우리 영혼은 주를 향해 더 강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죄로 풀무불에 던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느브갓네살 왕 앞에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이것이 하나님을 진정 믿는 자의 태도입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이야기

    지난 주일 예배 후 다리에 심한 장애가 있는 여 성도 한 분이 제 책에 사인을 받고 싶다고 찾아오셨습니다. 책을 받으시고는 감사해하며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목사님, 제 마음에 예수님이 임하여 계신 것을 알고 너무 기뻤는데, 저도 주님의 마음 안에 있음을 깨닫고 너무나 기쁩니다" 지나가듯이 한 말이지만 너무나 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마치 주님이 그분을 통하여 제게 주신 말씀 같았습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제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늘 주님을 생각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제 마음에 임하셨다는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늘 주님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가장 분명한 증거일 것입니다. 누군가 마음에 들어왔다는 것은 항상 그 사람을 생각하고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제 아내가 제 마음에 들어온 이후, 저는 늘 제 아내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제 딸들이 태어나 제 마음에 들어온 이후, 저는 늘 제 딸들을 생각하며 삽니다. 짤막한 시 한 편을 읽고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 사랑하는 한 사람이 떠났는데, 온 세상이 텅 비었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님을 마음에 영접한 이후 주님에 대하여 이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제게 있어서는 삶의 구원이었습니다. 교리로 알고 믿는 구원이 아니라, 삶과 사역이 놀랍게 변화되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놀라운 은혜이 눈이 뜨인 것 같습니다. 주님의 마음 안에도 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은 완전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자신의 삶을 완전히 맡기는 것이고 주님의 완전한 통치 아래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엄청난 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말입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도 늘 나를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놀랍고 기쁘고 든든한 일이 있겠습니까? 지난 주일 그 여성도를 만난 이후 제게 변화가 하나 생겼습니다.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주님도 나를 생각하시는 것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더욱 기뻐졌고 감사의 제목이 되었고 갈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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